
처음 이 드라마를 켰을 때, 저는 5분도 안 돼서 불편해졌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황동만이라는 인물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다 보고 나서야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황동만 효과 — 왜 그 사람 옆에 있으면 피곤한가
황동만은 처음에 그냥 눈치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친구가 운영하는 김치찌개집에서 갑자기 아기 입맛인 척 투정을 부리고, 대화 중에 상대방 말은 흘려듣다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이런 행동 패턴을 드라마에서는 '황동만 효과'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그 사람이 있는 공간 전체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현상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이런 류의 사람 곁에 있다 보면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닌데 탈진하는 감각이 옵니다. 드라마는 그걸 정확하게 포착했습니다. 동만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으로 묘사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워치에 찍히는 감정 수치가 그 사실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감정 워치'란 착용자의 현재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장치로, 드라마 속 가상의 기술입니다. 분노, 당황, 수치 같은 감정을 색상과 텍스트로 외부에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 설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숨기고 있는 감정 반응을 강제로 가시화한다는 점입니다. 동만의 워치는 '씨뻘겋게' 표시되는 순간이 반복되고, 그걸 보는 시청자도 함께 불편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정서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릅니다. 정서 전염이란 타인의 감정 상태가 관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정서 전염은 긍정적 정서 전염보다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황동만이 있는 공간이 급격히 냉각되는 장면들이 이 원리를 드라마적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동만이 20년째 실패하는 이유로 최대표는 "창조자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신랄하지만 틀린 말이 없어서 더 아팠습니다. 동만의 시나리오는 12번이나 수정됐지만 울화통만 터진다는 평을 받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가 담아낼 무언가를 아직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황동만이 말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드라마 안에서 그는 직접 고백합니다. 강의하며 떠드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자기 목소리가 세상에 닿는 순간에만 무가치함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조용히 있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결핍과 위로 — 이 드라마가 해결하지 않는 이유
친구와의 절교 장면은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붙들린 부분입니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아지트에서, 친구는 3분 27초간 침묵을 요구하며 그동안 쌓인 말을 꺼냅니다. 동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고, 혼자 떠들어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20년 인연이 끊어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절교 통보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이 전혀 크게 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터지는 음악도, 과장된 리액션도 없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현실에서처럼 진행됩니다.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 결핍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능력의 결핍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
-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관계가 무기화되는 과정
- 자기 증명에 실패할 때 '망가짐'으로라도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충동
은하는 동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한 마디가 동만이 20년간 헤매온 이유를 짚어냅니다. 분노가 방향을 잃은 건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 분노를 누군가를 위해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라는 개념이 연결됩니다. 서사적 자아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의미를 부여하는 심리적 구조를 말합니다.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 일관된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지 못할 때 정체성 혼란과 만성적 불안이 심화된다고 합니다(출처: APA(미국심리학회)). 동만이 계속 시나리오에 집착하는 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자기 서사를 완성하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 드라마도 감정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주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된 감정이 극적 경험을 통해 정화되고 해소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해소를 의도적으로 보류합니다. 대신 계속 쌓습니다. 그래서 보는 동안보다 보고 나서 더 무겁게 남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동만의 선전포고 장면은 그 무거움이 처음으로 방향을 찾는 순간입니다. 그는 최필름을 찾아가 면전에서 말합니다. 더 무가치하고 쓸데없어져서 그들을 더 힘들게 할 것이고, 그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올 것이라고. 이게 패배 선언처럼 들리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동만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이후 4년 만의 신작답게, 이 드라마는 인간의 밑바닥을 담백하게 담아냅니다. 구교환은 허세와 비참 사이의 민낯을 절제된 연기로 채워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다시 실감했습니다. 황동만이 밉다가도, 어느 순간 "저 상황이면 나도 버티기 힘들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게 이 드라마가 주는 위로의 방식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회만 켜보시길 권합니다. JTBC에서 매주 토·일 방영 중입니다.